주일예배 낮 12시30분    •    수요기도회 오후 7시 30분    •    새벽기도회 매일 오전 6시    •    장소: 오클랜드 참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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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증인된 삶으로 건강하게 자라가는 교회

‘말씀대로 믿고 성령으로 움직이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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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기 목사님의 설교 모음 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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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편지 20150726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지점

뉴질랜드는 일주일 어간에 네 계절을, 그리고 하루에 모든 종류의 날씨를 경험하는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강 추위를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포근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날씨 덕분에 이불 겉감까지 빨아서 뽀송뽀송하게 말려도 보고 집안 공기도 환기 시키면서 속 커튼까지 다 젖혀서 습기 찬 곳곳을 햇살에 건조시켜도 봅니다. 아직 8월이 남았는데도 봄이 오려나 내심 기대에 차서 오랫만에 공원 산책을 해 보니 벌써 목련 동산에는 동백꽃이 종류대로 색깔대로 활짝 피어 꽃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목련들은 가지마다 봉오리들이 가득 맺혀 있고 이미 터져서 자주빛 꽃들이 피어 있는 나무들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땅 위로는 생뚱맞은 듯 수선화가 군데군데 홀로 피어 있기도 하고 각종 구균류 꽃들이 하나 둘 솟아 나고 있는 것이 그곳에는 영락없는 봄기운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게만 느껴지던 겨울도 이렇게 한 풀 꺾이나 싶으니 봄을 부르는 비 소식도 반갑습니다. 부디 찬 기운만은 불어 오지 말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소원도 속에서 올라 옵니다. 또 한 달의 마지막 주간을 맞으면서 매일 우리를 말씀으로 만나 주시는 주님을 향해 온 마음으로 우러러 봅니다. 우리를 하늘 양식과 육신에 필요한 것들로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우리가 모르게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가슴 가득히 존귀함과 경외함으로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남은 모든 시간까지, 아니 영겁 그 이후에 영원토록 함께 하실 주님을 모신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사람들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출애급기 말씀 속에서 본 하나님은 죄인으로서는 가까이 갈 수 없는 분이신데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든지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주님도 우리 마음 속으로 찾아 와 자신을 보여주시며 만나 주시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습니다.

구약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놀라움은 바로 그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예언들 혹은 예표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다 이루어져서 이미 그 실체를 소유하고 있는우리들이 다시 보는 것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생생하고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점하나 티조차 없으신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려고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 방법으로 성소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 갈 의미있는 재료나 기구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심으로 얼마나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지 그 뜨거운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저의 마음을 강하게 때리는 것 하나는 속죄판과 증거궤를 만드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 후 거기서 모세를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참으로 울컥해지는 것은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된 사실이고 우리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속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며 새 생명의 은혜를 주시는 복음의 비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성도라 하면서도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그 진심이 없다면 하나님을 깊히 만나고 그 분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듣습니다. 반면 아무리 우리의 지난날이 비척거리며 살아 왔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소망이 가득합니다. 속죄판 위 증거궤 곧 주의 말씀이 머무는 그 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영광스러운 얼굴을 보여 주시며 친히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중심을 언제나 가져야됨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말씀으로 깨달은 자신의 모습을 계속 회개하고 고쳐나가기만 하면 넘치는 생명으로 우리 안을 채우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것을 믿고 이제는 그 복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선하고 아름다운 하늘나라를 욕심 내 보면서 7월을 마무리하기를 바래 봅니다.

참빛편지 20150719 겨울 이야기

겨울이 깊어 갑니다. 뉴질랜드는 지난 몇 주 동안 64년 만에 찾아 온 강추위를 만나서 남섬 북섬이 온통 얼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비오고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곳에 온 지 16년 째로 접어 든 우리가 경험한 겨울 중에 이번 겨울이 가장 춥지 않나 싶습니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추워서 얼었다가도 북풍이 불어 오면 다시 모든 것들이 따스함에 포근히 안깁니다. 이런 변죽 때문인지 벌써 뒷 마당에는 수선화와 튤립 뿌리에서 싹들이 그 두툼한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고 있습니다. 이미 천리향 나무는 꽃들이 피어 만발한데 추운 공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그 향기를 맞아주지 않아서인지 때 이른 만개가 아직은 낯설기만 합니다.

사계절의 끝인 겨울 한 가운데에 서서 계절의 리듬들을 느껴 봅니다. 추위 속에서 자연의 초목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마도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의 추수를 마무리하고 이제 쉼을 얻고 있을것 만 같습니다. 나무는 나이테를 겨울 내내 하나 더 만들고 있을 것이고 낙엽들이 다 떨어진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름으로 나무의 속살들은 다가 올 봄 날의 버들강아지들을 만드는 데 풀 가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초목들의 내면 세계에는 마치 어마어마한 공장들이 돌아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봄 날의 부활을 위해 소리없이 땅 속에서는 썩는 일이 계속되고 재창조하는 작업도 왕성하게 일어 나고 있을 것입니다. 오직 태양이 얼마나 따뜻하게 비춰질 지에 땅 표면은 온 센스들을 다 켜 놓은 채 말입니다.

그렇게 계절의 끝자락이 느껴지듯이 하루의 시작과 끝도 동일한 흐름을 따릅니다. 눈을 떠서 오늘 하루 주어진 삶 속에 맡겨진 것들을 부지런히 하다 보면 밤을 맞아 죽음 같은 잠을 청합니다. 내일 다시 새벽에 깨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인생의 계절들도 이 같이 흘러 갑니다. 어쩌면 삶의 전반전은 이미 끝이 나고 후반전을 시작한 지도 그리 새롭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반전을 돌아 보고 젊음과 자신감에 속아서 혹 바른 방향을 놓치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 힘과 시간을 다 소모해 버렸던 어리석음들을 말씀으로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과 원하는 것들 사이의 긴 궤리들도 구분하여 교통정리를 합니다. 어쩌면 후반전 나의 인생은 이제 그 궁극적인 방향은 죽음이 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잘 준비하는지가 남은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이 인생 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앞에 갈 준비들을 지금부터 하는 것이 시간을 버는 지혜일 것이고 인생의 후반전을 사는 바른 목표일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라면 말입니다. 아직도 거추장스럽게 이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없는지 말씀은 나의 내면을 단련하고 또 연단합니다. 겨울의 나무들 같이 모든 것들이 쉼을 얻고 새로운 봄날을 준비하듯이 부활을 향한 소망이 더 깊어 가고 있는지, 내 주님과의 깊고 깊은 사랑은 어디까지 왔는지, 그 분 앞에 이르기에 부끄러움 없는 매일을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 이 겨울을 채워갑니다. 바른 방향을 찾았다면 안심이고 괜찮습니다. 작은 걸음이지만 쉼 없이 주님 가까이 다가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인 우리는 초목들처럼 매일을 조금씩 죽어갑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영생하는 생명은 우리가 죽은 만큼 다시 살아 납니다. 비록 우리가 삶의 전반전에는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였다 하더라도 오늘 다시 아침을 맞는 은혜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제는 오직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만날 준비를 속에서부터, 마음으로부터, 아무도 모르는 내 인격과 삶의 구석구석으로부터, 주님의 영과 함께 청소하고 정리하여 새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겨울을 지나며 언제 올 지 모를 우리 인생의 겨울을 미리 내다 보며 말입니다.

참빛편지 20150705 신앙의 진위

7월 새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에도 건강을 지켜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빛이 되어 그 이끄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도록 필요한 하루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7월을 맞았습니다. 주님은 또 이 한 달을 어떻게 이끄실까 기대하고 궁금해 하며 주의 거룩하신 영과 동행하는 설레임으로 맞이합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두렵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람들이 그 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얼마나 제 멋대로 말하고 함부로 살면서 주님의 거룩하신 인격을 모욕하는지 모릅니다. 말로서 신앙이 있는체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시는 분임을 여전히 무시합니다. 잠언의 그 아름답고 고귀한 지혜들과 명철을 살펴 보았지만 정작 그런 하늘의 복들은 조용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심령에만 비밀스럽게 임한다는 마지막 결론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는 것으로 이미 내 인격의 수준이 된 것 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우리 인간의 죄의 상태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면 우리는 떠드는 입을 닫고 겸손히 작은 순종들로 자신의 내면을 단련하여 갈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요즈음에는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을 구별하기가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가짜 보석이 더 화려하고 반짝거리듯이 거짓된 신앙이 더 훤화하고 눈에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념이나 선언들로 신앙의 영성을 말하지만 저는 잘 속지 않는 편입니다. 신앙은 사실은 보이지 않는 내면과 인격의 행위로 그 진위를 드러내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신앙이 가득하지만 실제로는 가족도 돌보지 않고 정직하게 책임있는 생활을 하지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로 인해 지금도 주님은 세상으로부터 돌던져짐을 당하고 계십니다. 이상하게도 영적으로 하나님을 더 알거나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더 교만해지는 것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니 구원 자체가 하나님의 완전하신 은혜로 이루어진 것인데 거기에 어떻게 자신의 자랑이나 남 보다 더 낫다는 자기인식이 끼어들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이 깊어질 수록 우리는 베드로가 정확하게 말한대로 더 낮아지고 겸손하며 진실하고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직하게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조금만 신앙이 있으면 현 교회를 비판하고 모든 교회와 말씀의 권위를 부인하는 요즈음의 몇몇 단체들이나 그 속에 있는 청년들은 성경말씀에는 무식하면서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을 판단기준으로, 법으로 삼고 함부로 신앙을 내세웁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동일하게 하나님을 밀어 내고 자신이 기준이 되고 법이 되려는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항상 경계하면서 언제나 주님이 참 왕과 주인이 되도록 자신을 항상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구원에 관하여 다 전하신 성경말씀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고 살아가는 법이 되도록 이런 유혹들과 싸워 가야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택함받은 자에게는 구원의 증거이며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지만 버리운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돌과 바위가 되신다고 베드로는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베드로전저 2:8).

그리고 우리 신앙의 진위는 주님의 권위와 교회와 사람들이 세운 권위 아래서 주님을 위해 온전히 복종하고 그 가운데 계신 주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감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하나님의 권위에도 순종치 않으려는 포스트모드니즘의 철학사상 아래서 영향을 받는 이 시대에 참으로 깨어서 바른 진리의 영으로 분별하며 매일을 두려움과 근신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불순종의 영이 성도들 안에 까지 가득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이 시대에 순수하고 깨끗한 말씀을 사모하여 날마다 비밀하게 동행하시는 주의 영으로 채움을 입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속이지 말고 부끄럼 없이 사는 7월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참빛편지 20150628 자녀들을 위한 안정된 부모의 역할

6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고 7월이 시작되는 주간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많은 일들을 해 내고 밀렸던 매일의 일상들을 좇아 가느라 시간이 이렇게 훌쩍 간 줄 모른 채 한 달이 지나갑니다. 이제 나무들은 떨어질 낙엽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다 떨구어 내고는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하늘을 향해 풋 핸즈 업(Put hands up)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행히 상록수들이 많고 잔디가 여전히 파릇해서 그닥 을씨년스러운 겨울이라고 느끼진 않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라 잔디가 더 짙은 녹색을 띨 뿐입니다. 벌써 아이들의 2학기 텀 방학도 시작합니다. 겨울의 한 중간에 들어 서 있는 우리들입니다.

요즈음 우리들은 어른들이든지 자녀들이든지 하나님의 자녀된 균형잡힌 인격과 삶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벨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을 조금씩하고 있습니다.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 계를 더 깊이 하고 또 묵상한 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내면의 정신적인 건강을 찾고 구부러지고 뒤틀린 생각이나 감정을 바로 펴 잡아갑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나눔으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고 사회적인 관계성을 바르고 온전하게 이루어 갑니다. 거기에다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몸을 단련시키는 의지도 함께 굳혀 갑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의 몸 안에 머무르는 성전 된 개인과 우리 모두의 관계성에 깨끗하고 거룩함을 담아 함께 자라게하는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로 서로를 확인합니다.

어른들에게 뿐 아니라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말씀 묵상과 개인적인 적용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의 경우는 대분분의 생활이 공부와 관련되어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공부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해야 할 지 도울 필요를 강하게 느낍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와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자녀들을 돕고 지원하고 배워 온 저희로서는 참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있었고 때론 노하우가 되기도 하여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이면서 시간 낭비 없는 배움의 길을 갈 수 있을 지 도울 수 있는 나름의 지혜와 통찰력들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이런 격려와 지원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이번 방학에는 Study Seminar를 하루 정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목적과 방법을 이야기 하기 전에 오히려 전 부모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바램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배워 온 교육방식이 이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내는 태도들이 적잖히 많음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많이 하고 책상에 붙어 앉아 있어야만 공부가 되는 줄 알고 아이들을 푸시하거나 부모의 불안 심리 때문에 불필요한 공부를 더 많이 강요해서 역효과를 내기 쉽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생각을 하고 사고력을 키워가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들이 자라도록 도와 주지 않으면 독립적인 학습태도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컨셉 중심의 이해와 관찰 및 적용으로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 및 의견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교육 시스템인데 어른의 생각을 여과없이 받아 들이도록 강요받다 보니 자신의 point of view가 없는 우리 아이들을 만납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그 근거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증명하는지 등등의 자기 생각은 오직 부모들의 경청하는 자세와 존중하는 태도 위에 많은 의논과 대화를 통해 키워져 갑니다. 그런 대화가 없고 과정에 함께 참여함 없이 결과만을 요구하고 실망하면 심하게 책망만 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자녀들은 갈 곳이 없이 심리적인 방황을 하기 쉽습니다. 무조건 기대하기 보다 아이의 학습과정 속에 기꺼이 함께 해 주고 안심시키며 최선을 다 하도록 돕는 안정된 어른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노력들을 조금씩 함께 해 가십시다.

참빛편지 20150621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과 좋아하시는 것

우리는 두 달 동안 잠언 성경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느라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이 내가 살아 온 어리석은 걸음들을 말해 주고 있고 지금도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고 있는 나의 숨은 얼굴들을 고발하고 들추어 냅니다. 정직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의 거울을 비추고 있노라면 자신에 대해 착각하고 세상의 잘못된 기준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산 것들이 다 부끄러움으로 밀려 옵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신 것이 감사하고 이제라도 어리석은 길에서 돌아서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됨을 기뻐하며 작은 순종을 하나 둘 씩 이루어 갑니다. 그런 우리들이 만나서 진심어린 고백을 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비추어 주는 햇살과 같은 존재로 함께 엮이고 연결되어 자라는 것 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 두 주 정도 남은 잠언의 말씀이지만 여태까지 묵상한 것들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 하는 것이 분명하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잠언의 말씀 가운데 수면 위로 뜨오르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인격과 일하심 앞에 더 마음을 낮추게 되고 경외하게 됩니다. 왜 이런 정리가 중요하냐면 하나님이 모든 인생의 길의 최종 결정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큰 주제인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특징들을 통해, 악인과 의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자기를 의지하는 자의 비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 가는 삶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또한 우리의 선한 선택에 대해 책임져 주시지만 악한 삶을 심판하시기도 하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교만한 자를 너무나도 싫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자는 그냥 간섭하시지 않고 그 교만과 거만으로 악을 쌓게 하셔서 졸지에 망하도록 내어 버려 두시는 것을 봅니다. 그 교만한 중심에서 나오는 모든 입술의 열매들, 무례함과 건방진 것, 성내고 성급한 것, 불공평하고 불의하고 남을 중상모략하는 것 등을 모두 싫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이한 것은 반복을 통해서 강조를 하는 것들인데 보증을 서는 것과 무분별한 언어 생활,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무시하는 것, 그리고 분수를 넘어서서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과 지나치고 과하여 무절제한 것 등을 싫어 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신을 모욕하는 것으로, 그들을 돕는 것을 자기에게 꾸이는 것으로 여기시고 갚아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반면에 좋아하시는 것은 언제나 마음 중심으로부터의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겸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공평하고 정의로울 수 밖에 없는 것과 부지런하고 절제하며 신중하고 분별해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등입니다. 역시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돕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시고 악인을 꾸짖는 것을 의외로 기뻐하시면서 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미워하시는 것들을 적어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마음에 담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가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알고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자를 말하기에 우리의 신앙은 참으로 은밀하게 매일 자신의 중심과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그 실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급하게도 가짜 열매를 얼른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이려는 유혹 때문에 생명의 씨가 떨어졌지만 튼튼한 속 사람을 만들어 내는 긴 시간의 인내와 노력과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신앙생활의 얕은 측면을 대면합니다. 다시 잠언을 통해 매일 나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서 때가 되면 주님의 온전하신 인격과 성품을 닮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까지 주님이 싫어 하시는 것들을 내 안에서 뽑아내고 동시에 좋아하시는 것들을 다시 심는 기쁨과 온전함을 맛보아 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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